Review (Special Issue)

The Sea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Oceanography. 31 August 2019. 448-456
https://doi.org/10.7850/jkso.2019.24.3.448

ABSTRACT


MAIN

  • 1. 서 론

  • 2. 조사자료

  •   2.1 『조선통어사정(朝鮮通漁事情)』

  •   2.2 『조선국원산출장복명서(朝鮮國元山出張復命書)』

  •   2.3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

  •   2.4 『조선어업협회순라보고(朝鮮漁業協會 巡邏報告)』

  •   2.5 『한해통어지침(韓海通漁指針)』

  •   2.6 『한국수산지(韓國水産誌)』

  • 3. 맺음말

1. 서 론

명치정부성립 이후 근대화를 맞이하게 된 일본 사회는 급속한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농어촌 인구의 도시집중, 실업, 식량자원의 부족 등의 부작용도 심각해졌다. 이러한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기 위하여, 명치정부는 조선의 바다로 눈을 돌렸다. 남획으로 이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 일본의 바다를 대신하여 식량자원을 획득하고, 한편으로 출가(出稼) 어업 즉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와서 하는 어업 혹은 이주 어촌을 통해 실업문제도 함께 해결하고자 하였다. 또한 조선 문제를 둘러싸고 청 및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었으므로 이들과의 전쟁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청일전쟁에 승리한 이후에는 러시아의 동향도 예민하게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한 명치시대의 상황을 고려하면, 조선 바다에 대한 어업 장려는 물론이고 당연히 조선의 바다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도 진행되었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어업 진흥의 차원을 넘어 어민들이 조선 연안의 지형을 숙지하게 되면 전쟁에 어민들을 해군으로 동원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의 바다는 일본이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탈출구였다.

이 글에서는 1890년대 이후 1900년대까지 명치 정부가 조선의 바다를 어떻게 조사했는지를 대표적인 문헌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서와 이, 2019; 이, 2011, 이, 2012, 이, 2014). 조사는 행정 차원(정부기관), 군사 차원(해군), 민간차원(조선수산협회/흑룡회) 등 여러 주체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그 조사의 대강을 정리해 볼 것이다.

2. 조사자료

2.1 『조선통어사정(朝鮮通漁事情)』

이 책(Sekizawa and Takenaka, 1893)은 명치시대 최초의 조선 바다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보고서이다. 책 제목의 통어는 출어(出漁)와 같은 뜻이며, 이 책은 일본인 어부에게 조선 출어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리려고 편찬된 것이다. 세키자와 아키키요(關澤明淸)는 1892년 11월 동경을 출발하여 부산을 거쳐 우편 기선으로 인천에 도착한 다음, 경성에 들어갔다가 다시 인천으로 나와 일본 해군의 조해환(鳥海九)을 타고 여러 섬을 거쳐 부산으로 돌아왔다. 나아가 부산, 원산 간을 우편기선으로 왕복하였다. 다시 어선을 타고 경상 전라 양도의 연안을 돌아보았으며, 작은 배로 부산 주변의 바다를 돌아보았다. 1893년 3월 초에 조선을 출발하여 귀국하였고, 1893년 4월에 이 글을 탈고하였다.

조사한 내용의 대강은 그 목차를 보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목차는 총론, 조선해 출가어업의 기원ㆍ연혁, 통어규칙, 지리(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함경도, 충청도, 경기도), 해리 및 기상, 중요 수산물(哺乳類, 古魚類, 硬骨類, 頭脚類, 腹脚類, 辨胞類, 有穀蟲類, 刺蟲類, 海藻類, 食鹽), 조선인 어업의 상황, 일본 어선으로서 조선 바다에 와서 조업하는 배의 수 및 그 이익, 어획물의 판매 및 제조, 일본에서 건너와서 조업하는(出稼) 어업자에 대한 희망, 정부에 대한 희망, 자본가에 대한 희망, 부록(수호조규, 통상장정 및 각종법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총론에서는 조선해의 어업 및 조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가장 중시하고 있는 것은 조선의 바다에서 얻는 이익이다. 당시 그 이익이 해마다 160~170만 원이었는데, 일본인 어부들이 허용된 조선 바다 전체에서 조업을 한다면 그 이익이 배가될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으로 어부들이 조선의 바다에서 조업을 하면서 조류의 완급과 해저의 심천과 암초의 유무 등을 숙지하게 될 것인데, 이를 군사상으로 이용하면 대단히 유용할 뿐만 아니라, 어부를 해병(海兵)으로 삼으면 먼 장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서구의 여러 나라처럼 어업을 보호ㆍ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남해는 섬이 많아서 물길이 복잡한데, 현재의 해도(海圖)로는 오류가 많아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고, 해도 작성에 어부들의 지식이 물길 안내자로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측량함을 보내어 정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으나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건의는 최종적으로 『한국수산지』에서 구현되었다. 『한국수산지』에서는 일본 해군 수로부에서 측량하여 제작한 군사용 해도의 중요 부분을 삭제하고, 일본 어민들의 어로 활동에 도움이 되는 일반용 해도를 다수 게재하고 있다.

2.2 『조선국원산출장복명서(朝鮮國元山出張復命書)』

『조선통어사정』에 이어서 나온 조사보고서(1894년 8월 탈고; Kaburagi, 1895)로서 일본 농상공부 기수(技手)인 카부라기 요미오(鏑木餘三男)이 작성하였다. 이 조사는 원산상업회의소의 요청으로, 원산의 일본 영사관에서 외무성 통상국장 하라 타카시(原敬) 앞으로 조사자의 파견을 의뢰하였다. 카부라기의 파견에 이르는 복잡한 과정은 일본 외무성의 기밀문서로 남아있다. 하라 타카시는 곧 사신을 세키자와 아키키요(關澤明淸)에게 보내어 블라디보스톡에 갈 계획이 있으면, 그때 원산에 들러서 조사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뜻을 전하였다. 그러나 세키자와는 당시 원양어업을 위한 40톤 급의 어선 개량 작업 중이었고, 배의 진수식을 앞두고 있어서 원산상공회의소의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회신하였다. 이 때 발송한 문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사목적을 언급하고 있다.

그 주요 목적은 당도(當道, 함경도) 연해에 존재하는 수산물의 개황, 어족 해산의 종류, 이를 얻을 수 있는 계절, 조류의 상태 등에 이르기까지, 무릇 학리적(學理的)인 조사로부터, 본업에 종사하는 방법의 여하, 또 당항(當港)에 적당한 현실적인 계획, 회사조직의 예산 등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수산 사업에 관계있는 사항의 교시를 청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단순히 보통 학리상보다도 오히려 실지의 사정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을 초대하기를 바라는 생각입니다. (중략) 본도 연안의 수산물이 부요하다는 것은 이미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인데, 차차 조선인민도 그 이익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고, 자연히 중국인 등과 직접 매매하게 될 때에는, 우리나라 상업에 이익이 될 만한 점도 다른 이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업은 한시라도 빨리 우리나라 상인의 수중에 점유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카부라기는 1983년 8월 21일 동경을 출발하여 8월 30일에 원산에 도착하여 11월 30일까지 3개월 사이에 그 일대의 수산에 관하여 조사하였다. 내용은 강원ㆍ함경도 두 지역의 지리, 중요수산물, 어업상황, 일본출가어업자, 어획물의 제조 등이었으며, 특히 중요 항만의 지도를 첨부하고 있다. 다만 항만의 중요성은 모두 어업상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 조사는 청일전쟁의 와중에 이루어지게 되어, 카부라기는 선박과 어부를 확보하기 어려워 원산에 체류하고 있다가 9월 15일 일본군에 의한 평양 점령 이후에 비로소 조사에 나서게 된다. 9월 22일 수산회사의 어선을 타고 원산 주변부터 조사에 착수하였다. 먼저 송전항(松田港)의 굴서식지 및 영흥천 줄기의 연어어장을 둘러보았다. 일단 원산으로 돌아온 다음 10월 2일에 수산회사가 제공한 어선과 사원, 상업회의소가 제공한 조선인 통역자 및 어부 4명과 함께 원산항을 출발하여 원산만 안의 도서를 비롯하여 강원도 연해 60해리에 걸치는 어촌 항만 및 수산물을 조사하였다. 다시 북쪽으로 북청ㆍ신포까지 올라가 조사를 수행하였다. 조사를 마친 후 현지의 일본인 유지들에게 조사 결과를 보고하였고, 이때 원산의 영사 우에노(上野)는 조선의 해산물 증 가장 중요한 명태가 함경도에서 잡히고, 마침 어획기이므로 어장 및 북부 연해도 조사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외무성과 농상무성의 출장기간 연장의 허가를 얻어 작은 증기선을 타고 함경도 길주에 속하는 ‘사라코’까지 조사하여, 11월 30일에 원산으로 돌아 왔다. 전체 조사 해역은 500해리, 조사일수는 60일에 이르렀다. 이 조사는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출판이 결정되었고, 외무성 통상국에서 「조선국원산출장복명서(朝鮮國元山出張復命書)」(1895)로 간행되었다. 그 내용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주요 수산물로 정어리, 청어, 까나리(公筋魚, 이카나고), 방어, 마래미(鰍, 원래 미꾸라지를 뜻하는 한자이다, 이나다), 빙어(魚+新, 와카사기, 公魚라고도 한다), 도미, 가자미, 명태, 전어(鰶, 코노시로) ,꼬치고기(魣, 원래 연어를 뜻하는 한자이다, 카마스), 학공치, 도루목(鰰, 일본이 만든 한자이다, 하타하타), 고등어, 전갱이(鰺, 원래 비리다는 뜻을 가진 한자이다, 아지), 달강어(火魚, 카나가시라), 농어, 숭어, 상어, 고래, 가오리, 돌고래, 바다표범 등을 비롯하여 홍 합, 굴, 백합, 전복, 게, 해삼, 미역, 다시마, 우뭇가사리, 제염의 상황과 생산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어업상황에서는 조선인 어부들이 어떤 수산물을 어떤 어구로 언제 어획하는지, 또 조선인들이 많이 쓰는 지예망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명태잡이는 어떻게 하는지 등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한편 일본인 어부에 대해서는 부산해 근처와 비교하면 극히 적으며, 그 중에서 잠수기를 가지고 해삼을 잡는 것이 성업 중인데 잠수기선의 수는 43척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조사에 이어서 강원도 함경도 연해는 어종에 따라서는 굉장히 많은 수가 있는데도 조선인들은 정어리, 전어, 명태 이외에는 특정한 어종을 전업으로 잡는 일이 없고, 또 그 어구나 어법이 졸렬하므로, 일본인들이 건너가서 어업이나 제조 분야에서 벌릴 사업이 많은 것으로 전망하였다. 또한 일본인에 의한 해삼의 남획을 우려하면서 어구에 제한을 두는 등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조사는 1894년이라는 이른 시점에 강원도 함경도의 어장에 주목하고, 일본인 어부들이 이곳에 와서 조업을 할 필요성이 있음을 일본 정부에 알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일본 외무성도 그 중요성을 인정하여 보고서가 제출된 다음해에 책자로 간행하였다. 또한 카부라기의 파견과정에 현지인 원산상공회의소(會頭 河野省三部), 원산 일본 영사(上野專一), 외무성 외무대신(陸奧與宗光)과 통상국장(原敬), 농상무성 농상무대신(榎木武換)과 농무국장(藤田四郞) 등이 관련되어 조사를 진행시킨 상황을 통해서 이 조사는 외무성과 농상무성의 적극적인 관여 속에서 추진되었음을 알 수 있다.

2.3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

『조선수로지』(1894년 11월; Department of Hydrography in Japan Navy, 1894)는 일본해군 수로부에서 편찬한 책으로 1883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한 『환영수로지(寰瀛水路誌)』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환영수로지』 2판 2권(1886)에서는 조선과 흑룡강 지역을 함께 다루었으나, 1894년에 와서 『조선수로지』와 『흑룡연안수로지』로 나누어 편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조선의 수로에 관한 정보는 적어도 1886년까지는 거의 수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중 제 1편은 대체로 영국 해군 수로부가 1894년에 간행한 『지나수로지(支那水路誌)』에 의거하였고, 나머지 편은 1877년에서 1889년까지 일본해군이 실제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자세한 범례와 항해와 관련된 용어의 조선어가 수록되어 있어 참고가 된다. Fig. 1에 따르면 청천(晴天)을 쾌청, 담천(曇天)을 흐린 날, 우(雨)는 비라고 가타카나로 표기하고 있다.

수로지는 어업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군함의 항해, 정박, 물자보급 등을 위해서 항로, 정박지, 장애물, 등대 등을 조사한 것으로, 해도 등대표와 함께 항해에 필수적인 자료였다.

어업을 중심으로 한 다른 자료들과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비교를 위해서 부산항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고자 한다.

부산항(釜山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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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

The Terms Comparison between Korea and Japan in Nautical Publication of Korea.

이 항은 우리(일본) 대마도의 북쪽 곶에서 북서북으로 30해리 떨어져있으며 날씨가 맑을 때는 멀리 바라볼 수 있다. 항구는 북방 육지와 남방 절영도 사이에 있으며 북서쪽으로 4해리 반 들어가며 폭은 1해리에서 2해리이다.

항 기슭에는 부산의 여러 마을이 있다. 초량은 우리나라(일본) 사람의 거류지이고 신초량은 중국인의 거류지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거류지는 청결하며 근년에 크게 발달하였다. 세관 근방에 2개의 방파제가 있으며(그 일부는 高潮 때 물에 잠김) 단주항(端舟港)이다. 항내에 또한 방파제(波戶, 波止라고도 하며 육지에서 바다로 좁고 길게 돌출시킨 제방을 말한다. 파도를 막거나 배에 물건을 싣고 내릴 때 사용하기도 한다)가 있어서 좋은 상륙처이다. 부산 근해에 일본인으로서 어업에 종사하는 자가 35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항의 근방에서 조선 동부는 절영도를 제외하고 수목이 실로 드물고, 정박지 근방에 일부 소나무나 삼나무가 있지만 모든 산은 주로 잡초가 무성할 뿐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녹색을 띠지만 겨울 가을에는 풀이 마르고 돌이 드러나 황량하고 척박한 모습을 이른다. 산맥은 높이 800피트 내지 2000피트에 달하고 해안선과 평행하며 그 지맥은 해안으로 떨어져 골짜기를 이른다. 여기에 경작하는 논밭이 있다. 주민으로서 농사에 힘쓰는 것은 대개 부녀자이며 얼마간 미곡을 생산하지만 겨우 주민의 소비에 제공될 뿐이다.

2.4 『조선어업협회순라보고(朝鮮漁業協會 巡邏報告)』

부산에 본부를 둔 조선어업협회는 외형적으로는 1897년 2월에 일본어민들이 자주적으로 결성한 조직이었고, 1900년 6월에 조선해통어조합으로 흡수되었다. 이 기간에 조선어업협회는 조선해에서 조업하는 일본 어선을 시찰하면서 어업현황을 파악하는 한편, 조선인과의 분쟁 조정, 일본어민이 직면한 문제 해결, 우편 사무 등을 처리하면서 일본 어업자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작성된 순라보고서(Korea Fishery Association, 1898~1900; Table 1)는 부산영사관을 통하여 일본 외무부에 보고되었고, 이를 다시 농상공부로 회람시켰다. 직접 현장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 떤 조사보다 상세하고 생생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Table 1. Patrol period and report contents

Times Period Contents Area
3rd 1898.2.27.~3.28 Fishery Boats, Atmosphere, Products, Suggestions Busan~Mokpo
4th 1898.7.13.~9.4 Fishery Boats, Fishing Condition, Products and Sales, Communication,
Korean Fishery, Circumstances, Survey to Jejudo, Wishes,
Busan, Jejudo, Mokpo
5th 1898.8.17.~9.6 Present-condition of Daebyunpo etc. Busan~Gangwondo Jukbyun
6th 1898.9.25.~11.9 Overall situation of Fishery, Fishery Boats, Matter handling, Mail,
Wishes, Fisher's disease,
Busan~Mokpo
7th 1898.12.4.~12.28 Fishery situation, Salting carrier, Diving fishery, Fishery boats, Mail, Wishes,
Korean fishery, Matter handling, Sales boats, Emotion of Korean
Busan~Mokpo
8th 1899.1.12.~2.2 Boats of diving fishery, Storage, Residents, Mail, Korean Fishery Busan~Tonyong
10th 1899.6.27.~9.9 Boats of diving fishery, Skin diving fishery and gatherings, Matters,
Circumstances, Sea cucumber, Ear shell, Marine products,
Busan~Seosura
13th 1900.4.29.~5.17 Fishery boats, Fishery situation, Matters, Spring fishery
in Gunsan, Situation of ports, Wishes
Busan~Gunsan

5회 순라보고서는 부산에서 동북해안을 따라가면서 중요한 포구 등을 개별적으로 자세하게 조사하고 있다. 대변포의 경우, 위치 형세, 어부 및 어구, 일본어업자의 현황, 교통의 편리, 농업 상황, 인심 등의 항목을 조사하였다. 이어서 같은 방식으로 장승포, 일산포, 모포, 한자촌(汗者村), 포항촌, 죽변포, 축산포 등을 조사하였는데, 포구마다 항목에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각 포구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조사 기록하고 있다.

10회 순라보고는 강원 함경도 연안의 수산현황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 순라결과 무뢰한 어부의 단속, 원산지부 설치, 함경도 지역 어업의 가능성 등을 건의하고 있다.

또한 이들 순라보고에서는 현지 조선인들의 일본인에 대한 감정(인정)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0회 순라에서는 울산만 내 촌락과 축산포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평온하다고 지적하는 등 각 포구별로 조선인의 동향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순라는 조사선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면서 이루어지지만, 포구에 상륙한 다음에는 육상 교통과 그 편리성, 경작하는 작물과 경작시기, 경작상황, 상업상황 등도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비록 조선어업협회의 조사이기는 하지만, 조선 연안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로서는 개항장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일본인의 육지상륙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일본어선에 대한 순라라는 명목으로 조선 각지에 상륙하여 조선을 조사한 것으로 보인다,

13회 순라보고의 경우는 당초부터 군산포 앞바다의 어황을 시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군산으로 가는 도중 조선 바다에서 조업 중인 일본 어선에 대해서 소속 현, 어획 어종 및 방법, 어선 수, 승선인원, 자격 유무(조선해관 발급 免狀 소지)를 파악하고 있으며, 각 포구의 상황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군산포 조업에 대한 결과를 보면 지도에서 원산도에 이르는 어장에서는 조선, 중국, 일본 어선 1300여 척이 조업하였는데, 그 중 일본어선은 332척에 1331인이 도미와 삼치를 중심으로 약 5만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울러 조선인의 조기어업, 청과 조선인의 갈치어업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아직 일본인들이 조기와 갈치를 어획하고 있지 않으나 이들 어종을 어획하여 모두 조선인에게 팔아서 수익을 올린다면 해외 출가어업의 목적에 부합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미 군산포 앞 어장에 일본 어선이 과밀한 상태이므로, 도미는 이른 새벽에 삼치는 야간에 주로 어획하므로 어업시간에 제한을 두어 어장에서 일본어선이 원활하게 조업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있다.

이들 순라보고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순라선이 어촌 마을 등을 순회하면서, 일본인 어부와 조선인이 갈등을 일으킨 경우 직접 개입하여 배상을 요구하거나 조선인이 일본인 어부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겠다는 문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등, 일본인 어부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흥해(興海)에 속하는 한자촌(汗者村)에서 일어난 조선인들과 일본인 어부 사이의 분쟁에 나서서 이를 해결하였다.

2.5 『한해통어지침(韓海通漁指針)』

『한해통어지침』(Kuzuu,1903)은 일본 우익단체로 유명한 흑룡회(黑龍會)에서 발간한 책이다. 저자 쿠즈우 슈우스케(葛生修亮)는 흑룡회 창설 멤버 중 한 명이다. 쿠즈우는 『회보(會報)』(흑룡회) 및 잡지 『흑룡(黑龍)』에 「한국연해사정」을 연재하였다. 『한해통어지침』은 이 연재기사를 바탕으로 편찬한 책이다. 쿠즈우는 이 책의 서문에서, “한해(韓海)의 통어(通漁)는 장래 점점 발달을 꾀해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를 고취하기 위해 그 사정을 세상에 알게 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현재 통어 상황을 조사 보고한 것은 단지 조선해 어업연합회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연합회의 보고서는 성격상 각 방면의 개별적 조사여서 전반의 상황을 한눈에 살펴보기에 불편하다. 또한 통어 사항을 책 한권으로 펴내어 그 대요를 알 수 있게 한 것은 세키자와 아키키요(關澤明淸)과 타케나카 쿠니카(竹中邦香)의 『조선통어사정』(1893)이 있지만 이후 통어가 신속히 발달해서 정보가 이미 진부해졌다고 하고, 자신이 오랫동안 조선에 있으면서 각 어장을 편력하고 다소 그 사정의 대요를 통찰할 수 있었다. 이에 이 책을 편찬하여 그 동안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 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는 1899년 2월 초순에 한국에 건너가 육로로 부산에서 강원도를 거쳐 원산에 이르는 연안 어업을 시찰하였다. 원산에서 경성, 진남포, 평양 등을 돌아보고 다시 경성을 거쳐 충청, 전라 각 주요도시를 보고, 6월 부산으로 돌아와 조선어업협회에 입회하여 다시 동회의 순라선(巡邏船)을 타고 해상에서 4도(四道)의 연해를 시찰할 수 있었다. 이어서 통어조합연합회가 설립되자 이곳에서도 활동했는데, 1900년 7월에 사직하였다. Table 2에서 보듯이 그는 1년 5개월 사이에 어선 등을 타고 다니면서 조선의 바다에 대하여 자세하게 조사하였다. 잡지 『흑룡』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 책을 소개하였다.

생각건대 조선 어업은 우리 관서(關西) 지방 수십 현(縣)의 생활 및 경제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오늘날에 통어자(通漁者)가 한해(韓海)에서 거두는 실리는 실로 육지무역과 서로 대치될 정도의 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세상은 아직 이 방면에 대해 통어상(通漁上)의 여러 가지 사정, 열국과의 관계, 어류 서식지 및 서식 상태와 그 포획방법에서부터 어기(漁季), 어구(漁具), 사료 공급지, 건조장 차입법 및 제조방법, 근거항(根據港) 및 군도(群島) 연해의 조류, 어족 회유 모습, 포획한 어류 판매장, 통어조약 및 통어상 일체 수속, 조선의 인심(人情), 지리, 그 외 통어상 알지 않으면 안되는 여러 종류의 통계 조항을 정밀하게 망라한 좋은 저서가 없었다. 『한해통어지침』은 이러한 필요에서 모든 조건을 상술하여 조금도 빠진 사항이 없다고 생각한다.

Table 2. Syusuke Kuzuu's trip areas and period

place period distance (round) transportation
Busan~Dumangang 1900.6.27.~9.9 5520 (li 里) Fishery Association in Korea' patrol boat
Busan~Mokpo 10.18.~12.10 3650 11th patrol boat
Ulsan temporary boat
Busan~Soando 1901.2.26.~3.27 2230 12th patrol boat
Busan~Gunsan 4.29.~5.27 4770 13th patrol boat/ Boat of Fishery Guild in Korea

그는 아직까지 조선해 조업에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하면서 통어조합의 불완전함, 어선 분배의 편중, 어업기간의 단기성을 시정하고 통어방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또한 한국 연해 각지에 근거지 항구를 정하고 개인이 이주하여 영주하게 된다면 국가와 개인 모두 실리ㆍ실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책은 제 1장이 연혁 및 제규칙, 2장이 통어조합연합회, 3장이 연해 지리, 4장이 해리(海理) 및 기상, 5장이 중요수산물, 6장이 통어 현황, 7장이 중요어업의 현황, 8장이 포경업의 상세, 9장이 어획물 처분 및 판매, 10장이 외국인의 포경업, 11장이 한인 수산업의 일반(一斑), 12장이 희망, 부록으로 수호조규, 수호조규부록, 통상장정, 일본 인민무역규칙 및 해관세목, 해관규칙 둥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에 있어서는 기존의 자료들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자세하다. 부산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부산항이라는 소제목 아래 부산이 개항장 중에서 일본과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하고, 위도와 경도 상의 위치, 대마도, 시모노세키와의 거리, 수호조규 체결 이후 일본인의 전관거류지가 확보된 사실을 기록하고 상권은 오로지 일본인이 독점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2.6 『한국수산지(韓國水産誌)』

이상과 같이 일본 농상무성은 조선해 진출을 위한 목적으로 여러 사업을 실시하였는데 1905년 을사조약 이후 한국 주권을 좌지우지하던 일본정부는 그 무엇보다 한국 연안을 장악하기 위하여 한국 연안의 지리 정보를 담은 한국수산지를 시급하게 편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편찬 총괄자는 수산전습소 1기 졸업생이며 당시 농상공부 수산과장이었던 이하라 분이찌(庵原文一)이다. 1908년 2월부터 11월까지 짧은 기간에 800쪽이 넘는 방대한 자료를 담은 『한국수산지』 제1집이 완성되어 곧바로 간행되었으며, 제2집~제4집도 순서대로 편찬되었다. 『한국수산지』(Bureau of Maritime Products in the Ministry of Agriculture and Commerce, 1908~1911) 구성과 발행순서는 Table 3과 같다.

Table 3. The contents and publication period of Chronicle of Korea Fishery

Series Contents Compilation agent publication date
First edtion Geography, Marine Products Residency-General of Korea, Department of
agriculture and commerce
1908.12.25
Second edition Hamgyung, Kangwon, Kyungsang 1910.5.5
Third edition Chulla, Chungchong Government General of Korea, Department of
agriculture and commerce
1910.10.30
Fourth edition Kyunggi, Hwanghae, Pyongan 1911.5.15

『한국수산지』 편찬 조사담당원은 거의 수산전습소(수산강습소)의 졸업생들로 구성되었다. 그 외 츠카모토 도오겐(塚本道遠)과 오카모토 노부토시(岡田信利)는 수산전습소 교수이고, 한강구역을 조사한 엄태영(嚴台永)은 당시 농상공부 서기관으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한국수산지』는 짧은 기간에 신속하게 조사 편찬되어서 한국의 지명ㆍ어류명ㆍ통계자료 등 여러 곳에서 오류가 빈번하게 발견된다. 『한국수산지』 제1집 제2편의 수산일반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 연안의 지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집~제4집은 각 도의 도세를 개관하고 군-면의 순서로 마을의 연혁ㆍ위치ㆍ지세ㆍ연안ㆍ도서ㆍ교통ㆍ장시ㆍ물산 등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물산에는 일본 출어자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무엇을 어획하여 그 어획고는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어획물의 판매 제조방법과 수송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기술한 곳이 많다. 그리고 곳곳에 해도를 첨부하여 연안 마을의 위치ㆍ경역선ㆍ도서ㆍ정박지ㆍ등대ㆍ암초ㆍ수심ㆍ개벌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 항해 선박과 어업자에게 지리적 이해와 안전을 돕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수산지』는 수산관련 전문서적보다는 수산관련 지리정보 서적에 가깝다.

우리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과정을 육지 즉 땅의 침탈이라는 측면에서 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의 육지를 차지하기 전에 이미 조선의 바다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래서 4권의 『한국수산지』는 일본의 조선 침탈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1910년 경의 조선 바다의 실상을 생생히 전해주는 중요한 사료이기도 하다.

3. 맺음말

이 글에서 소개한 일본의 조선 바다 조사 문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일본의 각 현 별로도 조사된 내용들이 있다. 비록 이러한 조사들이 100년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당시 조선의 어업 상황은 물론이고 연해 지역 주민들의 생활상을 소상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한국수산지』는 전 4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비록 연해를 중심으로 조사한 것이지만, 그 속에는 역사와 문화와 관련된 내용도 적지 않다. 특히 연해 마을의 인구,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 어선과 그물 수까지 파악하고 있다. 수산학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미 린네 이후의 근대적인 수산물 분류법이 적용되고 있으며, 당시의 분류는 현재의 분류와 다른 점도 적지 않아서 동식물 분류학의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자료라고 할 수 있다.

Acknowledgements

이 글은 이미 발표된 「명치시대 일본의 朝鮮 바다 조사」(이, 2012)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하고, 『한국수산지』와 관련된 내용을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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